blog

category

결투가 널 기다려 어서 가 봐ㅏㅡ


뮤지컬 본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입에 노래가 남아서 종종 흥얼거리거나 오리지널 버젼 음원을 찾아듣고 있다. 

오늘 드디어 엄마한테 윤희에게를 보여줬다. 엄마가 김희애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냥 엄마가 이 영화를 한 번 봤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엄마가 김희애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20년이 넘게 엄마와 붙어 살았는데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나열하라고 하면 좀 어렵다. 아빠도 마찬가지고.. 하튼 엄마가 지루해하면 어쩌지 했는데 아까 방에 들어가 보니까 생각보다 재밌다고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영화는 지극한 나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따끔씩 가만히 있으면 생각나는 장면들과 대사가 있다. 사운드트랙은 또 취향이라서 자주 듣고 다니는데 편지 나레이션 트랙이 나올 때마다 꼭 내가 호타루 한 복판에 서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련한 옛 사람이 생각나는 기분이 들어서 혼자 엄청 청승 떨면서 듣는다. 

필름클럽에서 임클쓰가 새봄이 같은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새봄이 같은 가족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우리 가족들에게 새봄이 같은 가족이 아니라서 좀 미안했다. 우리 엄마도 영화를 보면서 나랑 새봄이를 비교하겠지. 

엄마가 영화를 재밌게 봤음 좋겠다. 나는 말이 많은 딸이 아니라 엄마랑 마주 앉아 영화 담론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엄마랑 이 영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엄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으면. 

내가 먼저 시작하면 되지 않냐 하겠지만 일단 나는 계속 밖에 나가 있고 집에 들어오면 방전이라.. 그리고 내 마음의 여유도 없고 부끄럽기도 하고 쫌.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


아침에 노트북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작업하다가 열두 시가 되면이 나왔다. 존나 일하기 싫다 하던 중에 이 노래가 들리니까 자연스레 이 카톡이 생각나서 혼자 좀 울었다. 카페 알바 한창 했을 때 같이 일했던 동생인데 나보다 2살 어렸지만 성격도 싹싹하고 일할 땐 어른스러웠다. 재미도 있고 내 말을 잘 받아주기도 해서 얘랑 같이 일할 때면 짜증나는 일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 그러다 얘도 카페 그만 두고 나도 좀 더 일하고 그만 둔 뒤로 몇 번 만나다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는데 올해 1월 1일에 생각도 못한 연락이 왔었다. 저 카톡을 보면서 여전히 애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일했을 때가 정말 어렸단 걸 떠올렸다. 

열두 시가 되면도 얘가 처음 추천해줘서 듣게 된 노래인데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매 겨울 필수로 듣는 노래였다. 이번 겨울은 바쁘게 살아서 되게 오랜만에 우연히 듣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앞두고 겨울에 카페 플레이리스트 만드면서 우리끼리 돌려 듣고 좋아했던 게 생각났고, 또 그때 얘 말처럼 너무 어렸던 그때가 생각나서 일하다 눈물이 났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미래는 아침에 추억이 담긴 겨울 노래를 듣다 눈물 쏟는 미래는 아니었을 텐데. 

또 나를 좋게 기억해준 것도 고마워서 더 기분이 복받쳤다. 으레하는 인사라 우리가 다시 만나기 힘들단 것을 안다. 그래도 오늘 우연히 들었던 음악처럼 언젠간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좁은 인간관계에 만족하며 이대로 유지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의 좁은 관계 중 대다수는 모두 어릴 때 만난 친구들이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되어서 새로 만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거다. 그러다 보니 종종 나도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게도 생각되는 상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요즘은 잘 안 그러지만 나는 늘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짜증 나도 잠깐이고 엄청 잘해주려고 애를 썼다. 사실 이 사람과 오래 만날 사이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냥 좋게 기억에 남고 싶었다. 그래서 연락이 끊겨도 나를 다시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막상 다시 만나려니 그게 또 어려웠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이들도 똑같은 결말일 걸 알아서 또 이 과정들을 반복하기 귀찮다. 이러다 장례식장에 아무도 안 오는 거 아닐까 맨날 이 생각하면서 웃는데 좀 슬프기도 하고 뭐 그렇다. 


저녁까지 일을 끝내고 전화로 털털 털렸다. 수정하기 귀찮아서 인터넷 돌아다니다가 내 동년배들의 요즘 소식을 알게 되었고, 의식적으로 비교하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비교하게 돼서 현타가 왔다. 난 왜 이렇게 살았지 하는 심심찮은 인생의 회의감이다. 물론 그들이 얼마나 노력을 해왔고 오늘의 결과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안다. 근데 난 열심히 살지도 않았고 노오력도 안 하고 살아서 아무 성과가 없는데 열심히 살고 성과를 하나 둘 내는 그들을 보니 부러워 하는 내가 너무너무 싫었다. 좀 더 어렸을 땐 열등감도 같이 왔는데 요즘은 그런 거 없이 그냥 부럽다. 부럽다. 하고 그게 끝이다. 그러다 이 사진이 생각났다. 

처음 저 결과가 나왔을 때 자기애가 100인 것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100퍼센트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렴풋했던 자기애를 수치로 확인하니 충격적이면서 좋았다. 그리고 이 100퍼센트의 자기애에도 왜 내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고민 중이다. 결론이 나오면 이 글에 추가해야겠다. 이런 거 중학교 사춘기 때 다 떼고 와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ㅠ 뭐 오춘기 왔다고 치자. 그리고 또 의외의 결과는 부정적이다. 겨우 29밖에 안 나오다니. 불평과 불만이 입에 붙어있는 나는 세상도 불만으로 보는 편인데 생각보다 너무 적게 나와서 놀랐다. 또 한편으론 그래도 내가 부정에 잠식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아래에 심각하게 존재를 뽐내는 인격 분열적과 조증적 수치도 눈에 거슬리지만 여기는 그냥 말을 아껴야겠다. 말 나온 김에 검사 다시 해봐야지. 근데 수정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 죽겠다...


지금 하는 일은 정말로 나를 좀먹고 보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빨리 그만 두고 싶은데 그만 두면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용기가 안 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이유는 그만둘래 하면 증액되는 카드값이다. 카드를 만드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할부 너무 편하고 좋다.. 카드 빨리 잘라야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나를 벼랑까지 내모는 이 일을 과연 내가 여름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고.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서 여름까지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마지노선을 6월로 보고 있다. 어른들이 맨날 말하는 것처럼 나는 나이가 있으니까.. 사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소리지르고 싶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열심히 살지도, 노력도 안 한 내게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렇기에 빨리 또 새로운 진로를 결정해야 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달에 생각하려다가 또 바빠져서 잠시 멈췄지만, 마감하고 나면 내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겠다. 나이 먹고 미래 설계라니 웃기지만 어차피 사는 게 다 뜻대로 되는 건 아니고 수많은 수정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냥 수정하는 거라 생각하려 한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심리 상담을 신청할 예정이다. 사실 이번 달 초 딱 기분이 바닥을 뚫고 내려갈 때 신청할랬는데 그 주 주말에 너무 잘 쉬어서 그런지 다시 좀 괜찮아져서 냅뒀다. 근데 이번엔 장기적으로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무조건 신청할 예정이다. 그리고 뭔가 차분하고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싶어서 도예를 한 번 배워보려고 한다. 주기적으로 주말마다 등록해서 배우고 싶은데 나는 주말이 불투명한 일이라... 이건 일을 그만두면 그때 생각해보고 이번엔 원데이로 들을 예정이다. 빨리 지긋지긋한 이번 일도 마감이 됐음 좋겠다. 


그동안에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차분한 취미를 찾으려고 오일파스텔을 샀다가 방치 중이다. 유일한 작품 두 개. 마음이 차분해지면 다시 시작해야겠다. 올해 처음 산 일기장도 나름 꾸준히 썼는데 또 밀렸다. 한 달 밀린 거 같은데 언제 채우지. 오늘 수정 빨리 끝나면 한 장이라도 한 번 써보곘다. 


글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사진은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걸로


마무리가 너무 과격한 거 같아서 진짜 마무리로 요즘 출퇴근길에 듣는 노래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