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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뜰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보고 왔다. 영화관에서 이렇게 울면서 본 영화가 얼마만이었는지. 

딱히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눈물이 계속 났었는데 당장 어제 밤에 잠들기 전 했던 고민들과 영화 내용이 통해서 몰입하지 않으려고 해도 혼자 눈물 줄줄 흘렸다. 마스크 없었으면 콧물 범벅된 얼굴 들고 상영관 나왔을 듯...

 

호불호 씨게 갈리는 것 같은데 내가 봤던 픽사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았다. 누가 봐도 어린 애들을 위한 영화는 아닌 것 같고 인생의 방향을 잃고 권태를 느끼는 어른들이 봐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메세지가 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뻔한 것을 잊고 살아갈 때쯤 한 번씩 떠올릴 순간이 필요할 때 보면 정말 좋은 영화.  

 

이런 생각을 맨날 했었다. 내가 만약 내 인생의 목적을 이루고 난다면 그 다음은? 그럼 끝일까? 더는 없는 걸까? 또 새로운 목적을 세워야 하나? 죽을 때까지 나는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살아야 하나? 그렇게까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당장 어제까지도 이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던지라 조가 끝내주게 멋진 연주를 하고 나와서 그 다음은요? 하고 묻던 장면, 불꽃은 목적이 아니라는 제리의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22가 나올 때마다 거의 대부분 울었던 거 같다. 그토록 지구에 오기 싫어했던 22가 페퍼로니 피자, 바람이 나오는 지하철 환풍구, 미용실에 있던 어린이용 사탕,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코니의 연주, 사람들의 웃음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 새파란 하늘을 보면서 지구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점점 마음이 기울어가는 게 눈으로 보였을 때 마스크 다 젖었음. 같이 지구에 내려와서 난생 처음 보는 광경들과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구석에 숨어있던 장면부터 눈물샘 열렸던 거 같다. 갑작스럽게 내쳐진 세상에 22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흔히들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이 있지 않나. '원하지도 않았는데 왜 태어나서 살아가야 하지?' 같은 질문들. 갑작스럽게 지구에 떨어진 22를 보면서 그 질문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고, 그 살아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그래도 살만 해서 버티게 해주는 순간들.  

 

개인적으로 죽고 난 후의 세계로 가기 전에 서있던 우주 같은 공간이 제일 무서웠음ㅋㅋㅋㅋ코코 볼 땐 아 사후세계 저 정도면 죽어도 살만 하겠다 싶었는데 여기는 너무 아무 것도 없는 훵한 공간이라서. 그 커다란 빛 너머의 세계가 절대 궁금하지 않았음... 그리고 뉴욕의 가을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테리 이동법들이 너무나도 좋았음. 이동진 평론가가 블로그에서 시각적인 창의성이라고 썼던데 영화 속 모든 표현들에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함. 

 

부가적인 캐릭터들도 더 쓰고 싶었는데 살짝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네. 나중에 재탕하고 다시 써야겠음.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고 기분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머리 맞은 것처럼 멍해진 기분을 들게 했던 게 보이후드랑 와일드였는데, 딱 이 두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기분을 오래만에 느꼈다. 큰 이벤트가 있지 않아도 사람들의 웃음 소리,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떨어지는 나뭇잎, 문득 올려다 본 하늘, 귀 아픈 도시의 소음들까지. 거창할 필요는 뭐가 있나. 나를 둘러싼 모든 일상들, 숨을 쉬는 지금들이 나의 하나뿐인 인생인데. 

 

이번 마감 끝나면 심야로 또 보러 가고 싶은데 그때까지 영화관에 걸려있기를 바랍니다... 

 

 

눈물 펑펑 났던 장면
너무 귀여운 테리 제리들